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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사랑에게’의 한 구절이다. 슬픔은 부재에 대한 기다림이고 사랑도 슬픔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독특한 관점으로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는 시이다. 이 시는 나에게 슬픔을 마주하고자 하는 의지를 일깨워주었다. 나는 내 감정들과 당당히 마주하고 치유 받고 싶다는 생각에서 정호승 작가의 시를 더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던 찰나 나의 손에 들어온 정호승 시인의 시집, 바로 ‘밥값’이다. 정호승 작가는 중학생 때 아버지가 은행을 관두고 시작하신 사업이 계속 실패하면서 서울 변두리로 이사를 가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는 다니는 고등학교에 학비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으며 졸업앨범도 살 수 없을 만큼 가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극도로 가난한 환경에서 정호승 작가는 문학가라는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대구 대륜 고등학교에 진학한 정호승 작가는 매일 아침 같은 학교 동문이었던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나오는 보리밭을 걸었다고 한다. 또한 같은 고등학교의 2년 선배인 형에게 정호승 작가는 늘 자신의 시를 보여주었다. 2년 선배는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집을 낸 실력자였기 때문에 정호승의 시를 읽고 평가해주었다고 한다. 고교시절부터 꾸준히 시를 습작한 결과 그는 경희대학국문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하였다. “나는 인간이 이루는 삶과 비극성에 관심을 갖는다. 이것이 내 시의 출발점이자 귀결점” 정호승 시인의 말이다. 정호승 시인은 민중들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상처를 받은 민중들에게 위로가 되고자 하였다. 그들의 상처는 외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힘든 삶이라도 살아가려는 시민들의 애절함과 그리움에 의한 상처라고 주장한다. 또한 우리나라 사회의 어두운 면을 따뜻하게 바라보고자 하였으며 소외되고 고통 받았던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슬프지만 따듯한 시어들로 나타내었다. 이런 그의 시에는 늘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감동이 있다. 정호승 시인은 90년대 이후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왔으며 따뜻함의 시인, 서민의 시인으로 불린다. 이 시집은 고단한 삶에 지쳐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추천한다. 앞서 말했듯이 현실에 상처 받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돕고자 하는 작가의 시적 특성을 반영하여 보았을 때, 바쁜 일상과 냉정한 현실에 지칠만큼 지친 현대인들에게 정호승 작가의 시들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읽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며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는데, 정호승 시인은 사람들의 상처에 공감하고 이를 위로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괴로워하는 현대인들에게 추천해주고자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시를 통해 위로를 받길 바라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의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에 대한 인생관이 시에 고스란히 녹아서, 시를 읽으면 막연한 위로가 아닌 구체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삶에 대한 고찰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항상 어렵다. 정호승 작가의 시를 읽으면 그는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의미있는 삶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하는지 들여다 볼 수 있다. 추천하는 두 번째 이유는 정호승 시인이 말하는 ‘삶’은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호승 시인의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 하지 말고 희망을 찾아가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는 이 시를 읽고 항상 부정적으로 사고하고 절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나의 모습과 상반되게 절망 속에서 오히려 긍적적으로 생각하고 희망을 만드려는 시인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희망으로 바라보면 절망도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문학으로 꿈꾸고 희망을 갈망하며 살아온 정호승 시인의 시는 그 어떤 시보다 따뜻하고 감성적이다.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들로 이루어져 있어 누구나 친해질 수 있는 시집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감성과 절제된 시어의 조화로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정호승 시인의 열번째 신작시집.3년 만에 발표하는 이번 시집에는 주변을 돌아보는 시인의 따스한 시선이 여전히 빛을 발하는 가운데 삶에 대한 단단한 의지와 인생을 성찰하는 경건한 자세가 담긴 시들이 실려 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지난 세월에 대한 반성의 자세를 일관한다. 아울러 근원적인 비애를 야기하는 현실의 남루함, 그로 인해 하루하루 세속에 찌들어가는 보통사람들의 죄의식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한다. 자신 또한 현실 속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이기적인 존재라는 겸허한 자각을 내보이는 시인은 그리하여 이러한 반성을 토대로 서로가 양보하고 희생하며 한데 어우러져 사는 삶을 소망한다. 실패와 시련을 부정하지 않고 끝내 희망과 열정을 길어올리는 시인의 목소리에서 묵직한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1부
봄비
입양
결빙
허공
밦값
득음정
운구하다
부활
모유
천사
고비
인삼밭을 지나며
물의 꽃
투우
설해목
선운사 상사화
거울
어느 벽보판 앞에서
비닐하우스 성당

별들은 울지 않는다
새똥

제2부
물의 신발
전철이 또 지나가네

충분한 불행
바닥에 쏟은 커피를 바라보며
죄송합니다
시계의 잠
명동성당
왼쪽에 대한 편견
휴대폰의 죽음
삼가 행복을 빕니다
풀잎에게
바다의 성자
폐사지처럼 산다
달팽이에게
도망자
수덕여관
종이코끼리
새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
거미

제3부
새들을 위한 묘비명
나의 방명록
웃음
밤의 비닐하우스
이중섭의 방
다산 주막
성탄절
나는 아직 낙산사에 가지 못한다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물의 꽃
벽돌
징검다리
용서의 의자
죽음준비학교
마음의 준비
허토의 시간
흰 삽
점자시집을 읽는 밤
시집

제4부
눈길
젊은 느티나무에게 고백함
광화문에서
타인
뒷모습
백로
폭설

그루터기
최후의 만찬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
모래시계
부평역
파도
심우장에 가다
증명사진
목련
성배
소년

해설|김유중
시인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