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의 노래를 매우 좋아한다. 수원 행궁동에 위치한 작은 책방 브로콜리 숲에 방문한 날, H가 이랑의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를 고를 때 내심 기뻤다. H가 이 책을 산다면 나도 냉큼 빌려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랑의 책을 읽으며 이랑이라는 사람이 좋아졌다. 나와 다른 점은 다르고 같은 점은 같은 그 사람이 멋있달까, 자랑스럽달까,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그 멋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나까지 멋있어지는 기분이었다.멋있는 사람을 따라 하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건 나의 취향 목록에 넣어두기를 좋아하는 나는 금세 따라 할 거리들을 찾아냈다. 예를 들어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에서 기억과 메모를 바탕으로 많은 글을 썼고, 그 글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지나치면서 흘린 말들을 주워 담고, 더 줍기 위해 뒤를 쫓아다닌다. 오늘 수집한 것은 정형외과 물리치료사들의 대화이다.(p. 18) 라는 문장을 읽자마자 당장 메모장을 켜곤 수집할 말이 없나 두리번거렸다. 2020.3.15.일요일 오후 11:01"와, 이 유튜브 1년 됐나봐!""대단하다. 뭐든지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대단해."좋아, 계속 책을 읽으며 또 따라 할 수 있는 걸 탐색한다.다음 앨범을 준비하면서 가사와 함께 써둔 글 몇 개를 사장님에게 보여줬더니 너 얘기가 너무 많다. 세상의 중심은 너냐? 고 물어왔다. 전에 한 번 같은 내용을 썼던 것 같기도 하다. 하도 내 얘기만 해대서 나도 내 얘기를 하는 데 질린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얘기를 해볼까 하고 컴퓨터를 켰는데 도무지 내 얘기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다. -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中이랑은 자꾸만 자기 자신을 살펴보는 게 제일 재미있고 자기 자신에게 제일 관심 간다고 했다. 나도 내 얘기하기 를 따라 해볼까? 그렇다면 나는 나에 대해 무엇을 쓸 수 있을까.아무래도 내 얘기를 해야 한다면 오른쪽 눈의 쌍꺼풀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 쌍꺼풀은 내가 교직에 들어선 2018년 하반기에 생겼다. 예쁘지도 않고 겹겹이 쌓여 있어 누가 봐도 피곤해 보인다 라는 인상을 전달하는 쌍꺼풀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방학만 되면 쌍꺼풀이 잽싸게 사라진다. 개학 일주일 전부턴 달력이라도 본 것처럼 슬금슬금 다시 생긴다. 2019년에는 신기한 일이 있었다. 아침을 안 먹고, 점심은 많이 먹고, 퇴근하자마자 저녁도 많이 먹고 자버리는 게 패턴이 되어버린 나날이었다. 밤 10시쯤 깨서 수업 준비를 하다가 늦게 자고 다음날 아슬아슬하게 일어나 출근하는 생활이 반복되며 몸이 무거워졌다. 5교시 수업을 하는데 내가 잠들 지경이었다. 결정적인 건 변비였다. 나는 변비가 그냥 화장실 좀 안 가는 것 이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인 줄 몰랐다. 배가 아파서 화장실까지 걸어가기 힘들 정도였다. 갑작스럽게 급식을 안 먹기로 결심했다. 뭐라도 바꿔야 할 것 같았다.장을 볼 때마다 신선 야채를 듬뿍 샀고 샐러드와 고구마를 점심으로 챙겼다. 아침에는 시금치와 바나나를 넣어 그린스무디를 만들어 먹고 저녁엔 요리를 했다. 삼시 세끼 식재료를 소진하므로 냉장고가 깔끔해졌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변비가 사라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쌍꺼풀도 사라졌다.몇 달 후 애인과 싸우고 엉엉 울다 잠든 다음날 다시 생겼다. 방학식을 하고 며칠 지나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그리고 2020년 3월 개학을 일주일 앞두고 다시 생겼고, 개학이 미뤄지며 다시 사라졌다가, 교육부의 일주일 후 온라인 개학! 이라는 보도자료를 읽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생겼다.그렇게 깊게 팬 쌍꺼풀은 하루 만 보 걷기 를 실천한지 3일 만에 사라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쌍꺼풀이 없다.나이 들수록 절실히 느끼는 건 몸은 정직하다 이다. 내가 운동한 만큼, 내가 먹는 만큼 나의 몸이 된다.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로 달려가서 쌍꺼풀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다. 쌍꺼풀이 사라지면 몸에게 칭찬받은 기분이다. 잘 살고 있어! 라고 우쭈쭈하는 것 같다. 한편 쌍꺼풀이 있으면 말 못 하고 응애 울어버리는 아기처럼 몸이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왜 쌍꺼풀이 생겼는지,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보게 된다. 물을 듬뿍 마시거나 동네 한 바퀴 걸으며 몸이 날 다시 칭찬해 주길 기대한다.나로서는 이런 나의 이야기가 교훈이나 깨달음으로 끝나지 않고 멈춰버리면 쑥스럽다. 그래도 오늘은 이랑 따라 하기의 날로 내 얘기만 멋대로 할 거니까 여기까지!
모두들 자신을 어떻게 돌보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대체 무엇을 해야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책 속에서 이랑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희극배우가 관객 앞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듯, 편하고 자연스럽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한다. 노래를 만들 때처럼 누워서 중얼중얼,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상하면 이상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예술가로서, 생활인으로서, 그냥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를. 이것은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고로,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때론 시선을 돌려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친구에 대해 이야기해보지만, 결국 다시 본인의 이야기로 돌아와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이 책은 일기와 같은 ‘기록’보다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가깝다. 이야기하는 것을, 글을 쓰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랑의 에세이는 저자가 겪는 감정과 욕망으로 가득하다. 그냥 웃었고, 울었다. 절망했고, 즐거웠다. 죽고 싶었고, 엄청 살고 싶었다. 일본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서로를 실컷 좋아한다.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기운 빠지게 울다가 동기들과 밖으로 나와 장난치며 힘껏 웃고 다시 들어가 친구의 영정사진 앞에서 실컷 운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며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다시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겠다 다짐했으나 안정을 되찾자마자 다시 바다로 뛰어든다. 죽고 싶다며, 사라지고 싶다며 괴로워하다가 어느 날은 겨우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며 ‘살려주세요’라 외친다.
이는 삶에 병적으로 찾아오는 변덕이 아니다. 조울도 아니다. 그냥, 살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인생을 잘 살아내려는 즐거운 놀이이자 악다구니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은, 괜찮은 상태로 나아가고 싶은 욕망이다. 이 에세이에 담은 저자 이랑의 이야기가, 멈출 수 없는 생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전작 이랑 네컷 만화 내가 30代가 됐다 에서 시크하고 때론 웃음이 나는 그림을 그려왔던 이랑은 이번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에도 에세이에 더불어 그림을 덧붙였다. 키우는 고양이 준이치와의 모습, 친구와의 아옹다옹한 에피소드, 일기장에 적어두어 간직해온 메모 등을 기반으로 구성한 그림들에 특유의 시크함이 전해지며 동시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간중간 코끝이 잠깐 찡한 여운도 담겨 있어, 그림으로도 많은 이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다.
네이버에 치면 나오는 사람입니다 10
대화를 기억하기 16
거울을 본다 큰 거울을 본다 19
직업은 낭비하는 사람 24
나도 생선이었으려나? 29
더이상은 싫다 34
살고 싶습니다 37
우리는 일을 해서 헤어지지 42
벌벌 46
나와 내 연인들은 왜 50
그런 날이 있었다네 56
노래와 같은 이름들 64
멋진 사람이 걸어간다 70
이십구 세의 이십구만 원 74
얼마예요? 79
서울에 사는 사람이 들어야 하는 노래 82
설사와 마귀 85
노래를 요리하기 90
싫어하는 사람이 보고 싶다 94
웃다 슬프다 잠든다 96
죄송했습니다 100
우리의 일은 춤이 된다 106
슬프게 화가 난다 109
언제까지 주는 걸까 113
좀 재밌었나? 116
갓을 쓰고 119
신은 멋지고 바보다 121
그 사람을 흉내냈다 128
신곡의 방 132
도망쳐 135
다시 바다로, 다시 죽으러 140
쓸 수 있다 할 수 있다 144
열심히 하고 있었나? 147
수화로 욕을 하고 싶어서 150
니가 뭔데 155
나머지 열세 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160
시원하게 164
가짜로 웃었다 166
보고 싶어서 그랬다 170
매일 늦었다 172
행복하고 싶었다 174
분했다 176
던지고 소리치면 괜찮아질까 179
그럼에도 불구하고 184
울다 웃다 그리고 묻는다 188
그리고 다시 묻는다 193
우리는 조용히 걸어서 돌아간다 201
고양이와 남자를 만났다 206
프로페셔널 나 210
고맙습니다 해야지 212
모두들 얼굴이 자란다 215
나와 열두 명의 친구들 217
할머니가 된 기분 220
꿈에 든다 221
다시 만나서 웃었다 226
전뇌화를 부탁한다 229
그냥 찍고 싶어서 232
한가롭게 도시를 이용하기 235
턱이 아프다 240
완성의 순간에 246
티타임이 필요하다 249
독서 타임이 필요하다 252
직업으로 고단하다 255
눈 덮인 산과 롤케이크 257
오늘 나는 260
조금 더 연기해야겠다 263
사라지기도 힘들다 268
혼잣말 훈련 270
코트가 멋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 272
세상의 중심 274
먹고 내보내는 삶 278
모두 유명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282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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